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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승일&션…몸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사람들 마음 움직였다
등록일 2014-03-20 조회수 2088

[j Special] 박승일&션…몸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사람들 마음 움직였다[중앙일보]입력 2011.08.20 01:25

루게릭 요양소 짓기 … “내·가·아·니·면·누·가·해”

2004년 이후 한 번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남자가 있다. 단순히 누워 있는 게 아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입술을 달싹이지도 못한다.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도 쉬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가래를 없애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린다. 이런 남자가 5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 유명 연예인과 손잡고 재단법인까지 세웠다. 자기 같은 환자를 위해 요양소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9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전직 농구코치 박승일(40)씨. 그는 최근 ‘승일희망재단’이라는 재단법인을 세웠다. 루게릭병 전문요양소를 짓기 위한 법인이다. 승일씨와 가수 션이 공동대표다. 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마비된 뒤에도 그는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재단 설립 소식을 듣고 기자는 다시 한번 그를 찾았다. 기사를 위해 그를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중앙일보는 2005년 가을과 2009년 여름에 그의 소식을 전한 적이 있다. 세 번째 방문에서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그 집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글=임미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그가 지내는 방은 항상 같은 풍경이다. 그 사이 두 번이나 이사를 했는데도 그렇다. 2m가 넘는 키에 맞춘 대형 접이식 병원 침대. 퓨퓨-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인공호흡기 소리. 그는 이번에도 눈동자만 움직여 기자를 맞았다. 9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전직 농구 코치 박승일(40)씨다.
승일씨는 2004년 이후로 줄곧 이 침대에 누워 지냈다. 2005년 기자가 처음 그를 찾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에겐 몇몇 근육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움직여 벨을 울렸다. 눈을 깜박여 안구 마우스로 컴퓨터에 글을 썼다. 지금은 눈동자 외엔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게 없다. 왼쪽 눈꺼풀의 미세한 떨림은 가족과 간병인만 알아챈다. 그 떨림으로 그는 글자판을 짚어 의사소통을 한다. 간병인이 글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차례차례 짚으면 눈꺼풀을 떨어 원하는 글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인터뷰는 14일 오후에 진행됐다. 기자가 물으면 그가 눈을 움직여 글자판을 짚었다. 한 단어를 쓰는 데 5분 정도가 걸린다.

2002년 봄. 유학을 마치고 현대 모비스에서 최연소 코치로 활약 하던 때의 박승일씨.

“찡·했·어·요·드·디·어·끝·났·구·나”
‘승일희망재단’은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에서 설립 허가를 받았다. “아이고, 허가가 났단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방문을 벌컥 열자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심정이 어땠어요”라고 기자가 묻자 그는 글자판을 짚어 이렇게 답했다. “찡·했·어·요·드·디·어·끝·났·구·나”
루게릭 환자를 위한 요양소를 짓는 것은 그가 2004년부터 매달려 온 꿈이다. 루게릭 환자는 몸의 근육이 차례차례 마비된다. 폐 근육이 마비될 때 루게릭 환자의 운명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24시간 간병인의 간호를 받아가며 사는 환자, 간병해 줄 사람이 없어 숨을 거두는 환자. 이렇게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게 그가 요양소를 지으려는 이유다. 루게릭 환자와 가족들이 서로 모여 간병 부담을 덜자는 것이다.
법인은 요양소 설립을 위한 계단 같은 거다. 지금까지 요양소 설립을 위해 박승일씨가 받은 기부금은 모두 5억5000만원가량. 요양소 설립을 위해선 최소 5억원이 넘는 돈이 더 필요하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영수증을 발행해 주지 못하면 기부금을 못 낸다는 단체도 많았다.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니 기부를 망설이는 이도 많았다.
법인 설립을 결심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류 준비작업부터 재단 자본금 마련까지 누군가 전업처럼 매달려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다 못한 큰누나 박성자(44)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재단 설립을 도왔다. 처음 서류를 넣은 뒤 10개월 만에야 허가를 받았다.
절망이었다가 희망이 되었다
2009년 6월. 승일씨는 기자에게 ‘안락사’ 얘기를 꺼냈었다. “숨·쉬·기·가·너·무·힘·들·어· 가·능·하·다·면·안·락·사·하·고·싶·어·요” 이렇게 글자판을 짚으며 울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기 위해 목에 뚫은 구멍이 헐거워지면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목 주변 근육이 이완되면 산소가 샜다. 산소 부족으로 종종 응급실에 실려갔다.
나약한 소리를 했던 건 육체적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공호흡기를 달며 그는 목소리를 잃었다. 그에게 안구마우스는 ‘살아가는 이유’였다. 눈동자를 굴려 커서를 움직이고 눈을 깜박이면 클릭이 되는 장치였다. 세상과 소통하는 마지막 끈이었다. 2009년 눈 근육까지 마비되며 그 통로를 잃은 것이다. 요양소 건립을 위해 꾸준히 홍보 글을 썼던 인터넷 카페 활동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어머니 손복순(70)씨는 “다리를 쓸 수 없게 돼서 휠체어에 탔을 때보다 안구마우스를 쓸 수 없게 된 그때가 더 가슴 아팠다”며 눈물을 훔쳤다.
2년 만에 만난 그는 눈빛이 달랐다. “요즘도 나약한 생각이 드냐”고 묻자 “살·고·싶·어·요”라고 분명하게 글자판을 짚었다. 그 사이 그는 달라졌다. 2009년 12월 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특수 휠체어를 선물받으며 6년 만에 외출을 시작한 것이다. 휠체어를 탄 순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세·상·이·다”
그가 휠체어를 타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경기도 용인시 죽전의 현대모비스 농구장. 2002년, 31세였던 그를 최연소 코치로 임명했던 옛 직장이다. 맨 처음 찾은 곳이 왜 거기였을까. “옛·날·꿈·이·현·실·에·서·도·이·뤄·질·것·같·은·마·음”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박승일씨 1 대전고 3학년 재학 시절, 이미 또래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컸다. 2 2005년. 중앙일보 기사 ‘루게릭, 눈으로 쓰다’(11월 9~12일자)를 보고 찾아온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루게릭병 등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을 위한 쉼터 건립과 간병비 인상을 약속했다. 3 2009년. 휴대형 인공호흡기를 장만해 6년여 만에 휠체어를 타고 외출할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농구장. 현대 모비스 유재학 감독, 후배 선수들과 함께. 4 2011년. 승일희망재단 설립 후 첫 공식 행사 ‘천사의 손길 리더십 아카데미’. 유지태·정준·양동근·강원래 등 연예인도 참석했다.

“산·타·션”
션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승일씨는 이렇게 답했다. “산·타”
지난 2년간 그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건 가수 션이다. 션은 2009년 11월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강연으로 모은 돈 1억원을 들고서다. 승일씨의 사연을 담은 책 ‘눈으로 희망을 쓰다’를 읽었다고 했다. 션은 돈을 건네며 “요양소가 설립될 때까지 돕겠다”고 약속했다.
션이 그를 향해 움직이자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그를 찾아왔다. 대부분 션을 통해 승일씨를 소개받은 이들이다. 배우 유지태와 양동근, 정준, 신세경을 비롯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녀시대 멤버들까지 승일씨의 집을 찾았다. 지난달엔 소녀시대 콘서트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움직일 때마다 승일씨의 활동이 다시 한번 알려졌다. 수백만원씩 기부금을 낸 연예인도 적지 않다. “돈·도·돈·이·지·만·션·으·로·인·해·좋·은·동·생·들·과·친·구·를·만·난·게” ‘산타’ 션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재단이 설립되면서 요양소 건립은 큰 계단을 하나 넘은 셈이다. 션은 “그동안 여러 교회를 통해 성금을 모으려 해도 공식 단체가 없어 성금을 내기 어렵다는 곳이 많았다”며 “공식적인 단체가 만들어졌으니 본격적인 활동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하자 승일씨는 긴 문장을 썼다. 자음과 모음을 맞추는 데 10분 정도가 걸렸다. “션·너·가·여·러·생·명·살·렸·다·루·게·릭·환·자·들·과·그·들·가·족·도”
“내·가·아·니·면·누·가·해”
승일씨는 지금 용기 백배다. 꿈이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언제 요양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내·년” 이라고 답했다. 아직 요양소 부지는커녕 최소 10억원으로 예상되는 건립 비용은 절반 남짓밖에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무엇이 그를 호기롭게 만들었을까. 그의 뒤엔 션과 연예인 군단 말고도 9년 동안 그를 지켜준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있다. 전국을 돌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손수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판매 기금을 기부하고, 자녀가 고3인데도 카페 운영자를 자처하는 회원들이다. “우리 승일이가 뭐라고 꼼짝도 못하는 애를 이렇게 찾아오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어머니 손복순씨는 “그런데 요즘은 승일이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이 승일이를 사용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며 또 울먹였다.
이제 승일씨에게 처음 가져왔던 질문을 꺼내야겠다. “도대체 그 집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어떻게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움직였나요.” 그가 힘겹게 글자판을 짚었는데, 대답이 허탈했다. “내·가·아·니·면·누·가·해”
기부천사 션 “도움받아야 할 승일, 남 도우려 애쓰죠”
기부계의 거물.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 조합이지만 지금 션은 실제로 그렇다. 기부문화의 상징이다. 2005년 10월, 배우 정혜영씨와 결혼기념일에 365만원을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아이들 돌잔치 비용을, CF 수익금을, 강의 사용료를 계속해서 사회에 내밀었다. 그런 그가 2009년 11월 박승일씨를 도와 루게릭 전문 요양소 설립에 나서자 승일씨를 향한 관심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단 설립을 축하한다.
“고맙다. 이제 공식적으로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됐다. 요양소를 지을 때까지 돕자고 마음먹고 나니 재단이 꼭 필요했다. 도움을 공식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승일이가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메시지라면.
“승일이는 힘든 상황이어서 도움을 받을 형편인데도 남을 도우려고 애쓴다. 사람들이 승일이한테서 발견하는 희망이 이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나눔에 나서는 것도 희망이지만, 승일이가 나눠주는 희망은 훨씬 더 크다.”
●옆에서 지켜본 루게릭병은 어떤 병인가.
“(한숨) 참 쉽지 않은 병이다. 너무 많은 희귀병이 있어서 이 병이 최고 악질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더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상황 때문에 그냥 생명을 놓는 환자들이 있다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션을 만난 뒤로 승일씨가 많이 변한 것 같다.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 (얼굴 근육을 못 움직이니) 표정이 변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그렇게 보인다. 아주 미세한 차이랄까. 내가 한 살 어린데 그냥 말을 놓기로 했다. 친동생처럼 대해준다. 누가 선물을 보내거나 찾아오면 문자를 꼭 보낸다.”
●기부가 늘면서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고 강연 초대를 많이 받는다. 나도 그냥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실천한 것뿐인데, 신기하게 갈수록 기부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진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들도 부족함 없이 살고 있으니 신기하다.”
●승일씨는 션을 ‘산타’라고 불렀는데, 션한테 승일씨는.

“네잎클로버 같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항상 희망을 찾아 헤매고, 희망을 찾으면 굉장히 행복해하지 않나. 네잎클로버는 그 희망의 상징이고. 승일이가 그렇다. 찾으면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