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지훈 “형, 제대하면 일어나서 꼭 환영해주세요.” 박승일 전 코치 “지훈아, 건강히 다녀오기 바란다.”
농구로 맺어진 선후배의 뜨거운 사랑이 시간을 멈춰 세웠다. 함지훈(26, 울산 모비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고,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박승일(39, 모비스 전 코치)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통합 최우수선수(MVP) 주인공 함지훈이 18일 오후 박승일 모비스 전 코치에게 2009-2010 프로농구 정규리그 MVP 상금 500만원을 쾌척했다. MVP답게 상금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썼다.
함지훈의 선행은 아름다웠다. 다음날인 19일 군 입대를 앞두고 있지만, 직접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박씨의 집을 찾았다. 단순히 상금을 전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함지훈은 2시간 가까이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 두 손을 꼭 잡으며 농구 선배인 박씨에게 응원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박씨는 이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센터 출신인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후배가 함지훈이기 때문. 사랑스런 후배 함지훈이 온다는 소식에 목욕도 하고, 깨끗하게 면도도 했다. 일부러 흰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박씨의 곁에서 간병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 김중현(36)씨도 덩달아 흥분했다. “오빠가 혼자 부풀어서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었어요. 함지훈 선수가 얼굴이 고와서 외모도 엄청 신경 쓰더라고요. 흰색 티셔츠는 잘 안 입는데, 잘 보여야 한다고 갈아입기까지 했어요.”
박씨는 모비스 우승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5차전도 직접 관람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7년 만에 가진 체육관 방문이었다. 하지만 모비스는 다음날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어 아쉬움을 남겼다.
대신 박씨는 모비스 우승 장면을 TV로 지켜봤다. 마치 자신이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던 박씨는 선수들이 샴페인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순간 끝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오빠가 그날 울었어요. 점수 차가 많이 나서 경기는 안심하고 봤는데, 마지막에 감독님 얼굴을 비추니까…”라며 “함지훈 선수가 MVP 탄다고 TV에 나오니까 좋아서 혼자 웃더라고요”라고 전했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글자판을 이용해 유재학 감독에게 “감독님, 지훈이 왔어요”라고 문자를 보냈고, 곧바로 유 감독도 “그래, 좋은 시간 보내라”고 답문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후배 함지훈에게 보여주려고 미리 하고 싶은 말을 쪽지도 적어 놓기도 했다. 박씨는 “내가 센터 출신이라서 너의 호쾌한 플레이를 이년간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쉽다”며 “상무에 가서 네가 보충하고 싶다던 체력을 꼭 보강하고 건강히 다녀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함지훈도 “비시즌에도 힘내라고 숙소까지 찾아오시고, 챔프전까지 오셨는데 함께 우승하지 못해 아쉽다”며 “선수들끼리도 형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6차전 기필코 이기자고 마음먹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씨를 대신해 어머니 손복순(69)씨는 “키도 큰데 얼굴도 예쁘게 생기고 MVP까지 타서 어머님이 자랑스러워하시겠다. 도움을 주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농구인들이 도와주면 승일이가 더 뭉클해 하는 것 같다”며 “2년 후에는 승일이가 일어서서 수고했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애써 눈물을 감췄다.
함지훈에게도 이번 일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했다. “태어나서 이런 일을 한 것이 처음인데 정말 뜻 깊은 것 같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형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팀을 대신해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함지훈은 박씨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다음 일정이 있는데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함지훈은 어렵게 방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형,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 제대하고 왔을 때는 꼭 일어나서 환영해주세요.”
대전고와 연세대를 나와 1994년 실업팀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던 박승일 전 코치는 2002년 당시 32세의 나이에 모비스 코치에 선임됐다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며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소 건립을 추진 중이다.

| 글, 사진 서민교 기자(11coolguy@jumpball.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