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탄핵”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에서 열린 파면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파면되기까지 122일간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시민들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정치권은 수습하지 못했지만, 그사이 시민들은 어깨를 겯고 앞으로 나아갔다.“정치, 우리의 광장 닮아갔으면”대학생 김철규씨(26)는 “한국 사회를 가로막는 것은 많지만 시민들은 진보하고 있다”며 “4개월 동안 보여준 시민들의 헌신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지난 한 달은 정국이 암담하고 불확실해 공포스러웠다”며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시민들은 굉장히 높은 민주주의 의식과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치가 광장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광장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의 발언에 귀 기울여준다”고 말했다.“솜방망이 아닌 제대로 된 처벌을”5·18민주화운동 당시 소년병으로 전남도청을 지킨 경창수씨(64)는 “우리 국민이 쿠데타를 마무리 짓기 위해 잘 싸웠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군사반란군을 국민들이 제압했다”고 말했다. 경씨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조사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부역한 사람도 가려내 다시는 이렇게 하면 엄청난 벌을 받는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씨는 “광장에 나선 사람들을 보면 희망적”이라며 “한국 역사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민주주의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석열 파면된 오늘만큼은 파티”대학생 강민서씨(20)는 전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으로 와 밤을 새운 뒤 윤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을 들었다. 강씨는 “윤석열 탄핵, 파면까지 시민 여러분 덕분에 승리했다”며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오늘만큼은 파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꽉 막혔던 가슴, 반쯤 풀린 기분”인천에 사는 회사원 윤철호씨(52)는 매주 2번씩 서울 한남동 관저 앞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했다. 윤씨는 “평일에 일 마치고 한 번, 주말에 한 번 왔고 철야 집회에 참 작곡가 주영훈씨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찬양 ‘거기 있었다’에 담긴 간증을 나누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작곡가 주영훈(56)씨가 만든 찬양 ‘거기 있었다’는 오랜 시간 아버지 병간호를 하던 주씨가 같은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입니다. 미국에서 30여년간 개척교회를 섬기다 은퇴한 그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3년 넘게 치료를 받던 중 지난달 별세했습니다. 같은 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종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실까 원망했을 때도 있었다”며 “그런데 간병 기간을 돌아보니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모습을 통해 자녀들이 진정한 섬김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돌아봤습니다.병간호 중에 주씨가 유튜브로 찾아 듣던 찬양은 그에게 큰 위로였습니다. 어느 날 찬양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됐는데 가족들이 아파서 병실에서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나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외로워하고 절박하게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종종 병실에서 마주치는 다른 보호자들을 볼 때마다 다들 어딘가에서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간호에 지쳐 늦은 밤 홀로 잠이 들 그 누군가에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옆에 계시다는 것, 그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게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니 곡이 금방 나오게 됐죠.”“너 홀로 있을 때 그때 나 거기 있었다/ 또 너 목 놓아 울 때 그때도 거기 있었다/ 너 겨우 버틴 오늘 난 또 여기에 있다/ 너의 간절한 기도 모두 듣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곡은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곡조 있는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영상 보기 주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융통성 없고 센스 없고 설교도 재미없는’ 목회자였습니다. 강남 노른자 땅을 싼값에 팔고 오로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목회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회상했습니다.“제가 수많은 히트곡을 써도 아버지는 좋아하시지도 않고 찬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