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탄핵박제 105인 - 34회 나경원] "판사는 소수의 보루... 좋은 선례 만들겠다" 다짐했던 '젊은 그대'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무산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가보다 정당을 중시하는 길을 선택한 최악의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친윤계 윤상현 의원은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는 말로 표결 불참에 따른 정치적 영향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2.7탄핵 보이콧에 가담한 105인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2005년 7월 28일, 당시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위가 서울 마포구 '맑음터'에서 마련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나경원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젊은 그대1만 8239건. <연합뉴스>의 보도사진DB 웹사이트(헬로아카이브)에서 '나경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숫자다. 그동안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서울 동작구을)이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조명을 받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출발을 최초로 전한 것은 2002년 9월 22일 자 <동아일보>. 나 의원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을 "30대 현직 여판사가 정치 활동을 위해 법복을 벗었다"란 첫 문장과 함께 이렇게 전하고 있다.서울대 법대(82학번)를 졸업한 나 전 판사는 사법고시의 우수한 성적과 미모로 95년 법관 임용 때도 주목을 받았으며 부산지법과 인천지법 판사를 거쳤다. 남편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부부 판사였던 나 전 판사가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은 불과 일주일 전. 나 전 판사는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지인들도 '왜 시끄럽고 혼탁한 정치권에 발을 담그려고 하느냐'며 만류했다.같은 시기 정치권에 발을 담근 사람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들 두 사람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판사 출신이라는 점, 게다가 두 사람은 당시 39세로 나이까지 같았다. 차이점도 도드라졌다. 나 의원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이른바 '금수저'였고, 박 의원은 그 반대 경우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정도였다.박 의원이 존경을 표한 이는 노무현이었다. 박 의원은 "민주 세력의 정통성이 노 후보에게 있다고 확신한다"며 "대의명분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역사를 위해 노 후보를 돕겠다"고 출사표를 전했다. 박 의원은 법률특보로 노 후보 옆을 지켰다.대선 유세 기간 '젊은 그대'를 부르는 이회창 후보 옆에는 나 의원이 있었다. '젊은 그대'는 당시 한나라당의 공식 선거 로고송이었다. 나 의원은 "판사 시절부터 이회창 후보를 존경했다"고 밝혔다.[12.7 탄핵박제 105인 - 34회 나경원] "판사는 소수의 보루... 좋은 선례 만들겠다" 다짐했던 '젊은 그대'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무산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가보다 정당을 중시하는 길을 선택한 최악의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친윤계 윤상현 의원은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는 말로 표결 불참에 따른 정치적 영향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2.7탄핵 보이콧에 가담한 105인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2005년 7월 28일, 당시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위가 서울 마포구 '맑음터'에서 마련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나경원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젊은 그대1만 8239건. <연합뉴스>의 보도사진DB 웹사이트(헬로아카이브)에서 '나경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숫자다. 그동안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서울 동작구을)이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조명을 받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출발을 최초로 전한 것은 2002년 9월 22일 자 <동아일보>. 나 의원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을 "30대 현직 여판사가 정치 활동을 위해 법복을 벗었다"란 첫 문장과 함께 이렇게 전하고 있다.서울대 법대(82학번)를 졸업한 나 전 판사는 사법고시의 우수한 성적과 미모로 95년 법관 임용 때도 주목을 받았으며 부산지법과 인천지법 판사를 거쳤다. 남편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부부 판사였던 나 전 판사가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은 불과 일주일 전. 나 전 판사는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지인들도 '왜 시끄럽고 혼탁한 정치권에 발을 담그려고 하느냐'며 만류했다.같은 시기 정치권에 발을 담근 사람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들 두 사람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판사 출신이라는 점, 게다가 두 사람은 당시 39세로 나이까지 같았다. 차이점도 도드라졌다. 나 의원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이른바 '금수저'였고, 박 의원은 그 반대 경우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정도였다.박 의원이 존경을 표한 이는 노무현이었다.